V.A
한국고음반연구회 음향자료선집 (9) 이보형 채록 (숨은 명창들의 단가) (한국음반학 13호 서적+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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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 :HKYCD09
장르 :단가
제조사 :한국고음반연구회
원산지 :국내
출시일 :200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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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음반연구회가 매년 출판하는 한국음반학 제13호 (2003년)의 출판물과 부록CD

01. 이산 저산. 소리: 김여막 북: 이보형 4:51
02. 적벽부. 소리: 김계화 북: 김XX 4:27
03. 만고강산. 소리: 심화영 북: 이규호 3:53
04. 편시춘. 소리: 김재근 북: 김재근 3:33
05. 이산저산. 소리: 나성엽 북: 미상 4:14
06. 진국명산. 소리: 박춘성 북: 박춘성 2:46
07. 천생아제. 소리: 신옥주 북: 이보형 3:48
08. 사창화림. 소리: 이옥진. 북: 미상 5:14
09. 이산저산. 소리: 진춘도. 북: 미상 3:43
10. 관동팔경(동해가 막막허여) 소리: 최명임. 북: 송희열 5:01
11. 적벽부. 소리: 김명심 북: 이보형 0:54 
총 43:01


기획: 한국고음반연구회
현장조사·녹음제공·감수/이보형 
자료정리/노재명 장휘주 
곡해설·사설채록/성기련 
교정/배연형 이진원 권도희 임혜정 
진행/정창관 조유미 김종철 김지연 송자현 윤형욱 
편집마스터링/양정환 
*2번 곡 제공: 김계화/ 3번 곡 제공: 심화영


해설서 내용::

<이보형 채록: 숨은 명창들의 단가> 음반을 제작하며 


『한국음반학』 13호 부록으로 제작되는 본 음향자료선집은 이보형 선생님께서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현지조사를 통해 채록한 판소리 창자들의 단가를 정리하고 수록한 것이다. 한국고음반연구회에서는 1998년 이보형 선생님의 현지조사 자료 중 중요한 판소리 자료를 추려 ‘이보형 채록 판소리(1)’ CD를 제작한 바 있는데, 이번 CD는 그 후속작업으로 제작되었다. 원래 계획은 ‘이보형 채록 판소리(2)’라고 하여 판소리 대목을 주로 수록할 예정이었으나, 중요한 판소리 자료들이 대부분 1998년에 제작된 CD에 담겨진 바 있어서 이번에는 단가만을 따로 모아 CD로 발매하기로 하였다. 

이보형 선생님께서 현지조사에서 찾아낸 창자들 중에는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활동을 접은 경우도 있고 거주 지역에서 꾸준히 소리 활동을 계속해 온 창자들도 있다. 단가(短歌)는 ‘본사가(本事歌)’인 판소리를 부르기 전 창자들이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로 상대적으로 판소리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보형 선생님께서 현지조사를 하며 만난 창자들의 경우 지방에서 숨어지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한 두 곡의 단가를 부르고 또 불러서 자신의 특장으로 삼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단가들을 듣다 보면 창자 개개인의 소리 공력이 잘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오늘 복각되는 이 단가들은 지방의 창자들을 하나 하나 발로 찾아내어 학습내력을 물어 기록하고 실제 소리를 녹음한 이보형 선생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역사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소중한 음향자료를 복각하는 것은 판소리를 연구하는 이들이나 혹은 좋아하는 이들에게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모쪼록 이 귀한 자료의 공개로 인하여 보다 판소리 및 단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음향자료 선집이 나오기까지 자료 선정에 애써 주신 노재명, 장휘주 회원님, 그리고 음반 제작을 총괄해 주신 정창관, 양정환 회원님,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한마음으로 도와주고 지켜봐 주신 회원님들께 모두 감사드린다. 

2003년 11월 22일 
성 기 련 
수록곡 해설 및 사설 채록 


성기련(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1. 김여막 창 단가 <이산 저산> 

소리: 김여막 북: 이보형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 일시 및 장소: 1986년 2월 15일 전라남도 함평 

김여막은 12세부터 17세까지 임춘앵, 강장원, 최막동 등에게 토막소리로 판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이 녹음을 들어보면 김여막은 카랑카랑한 성음을 가지고 거뜬거뜬하게 소리를 해 나가는 특징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길지 않은 소리 학습기간에 비해서 어느 정도 공력이 있는 창자였다고 할 수 있겠다. 20세기에 들어와 크게 유행한 단가 <이산 저산>은 대부분의 창자들이 사설에 따라 부분 부분 계면성음을 섞어 부르는데, 김여막 역시 단가 후반부에 계면성음을 넣어 인생무상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 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은 반겨헌들 쓸 데가 있느냐 봄은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승화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삭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한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 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설백천지백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무정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내 청춘도 아차 한 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어와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 말 들어보소 인간이 모두가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산 인생 아차 한 번 죽어지면 북망 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생전 일배주만도 못하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말어라 아까운 청춘들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 마라 가는 세월 어쩔꺼나 늘어진 계수나무 끝끝어리다가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허는 놈과 부모 불효허는 놈과! 형제 화목 못 허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앉어 흔들흔들 헐 일을 허여가며 놀아보세. 

2. 김계화 창 단가 <적벽부> 

소리: 김계화 북: 김○○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 일시 및 장소: 1989년 7월 6일 경상남도 울산시 남구 신정동 

김계화는 주로 오수암에게 소리를 배운 창자이다. 오수암은 맛있는 시김새로 방안소리를 하여 인기가 있었다고 평가받는데, 그래서인지 김계화가 부르는 단가 <적벽부>를 정정렬창 <적벽부>와 비교해 보면 전체적으로 잔 시김새가 많이 들어있고 속도도 느린 편이다. 이 음반에 수록하는 단가 <적벽부> 자료는 이보형 선생님께서 현지조사할 당시 1985년 울산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김계화를 초대하여 방송한 자료를 복사한 것인데, 복사하는 과정에서 테잎을 교체하느라 단가 후반부의 일부가 녹음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일반적으로 부르는 단가 <적벽부>보다 짧게 녹음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시간 제한상 단가 후반부를 생략하여 불렀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 

임술지추칠월 기망에 적벽강 배를 띄워 임기소지 노닐 적에 청풍은 서래하고 수파는 불흥이라 술을 들어 객을 주며 진풍명월 읊조리고 요조지장 노래할 제 이윽고 동산에 달이 솟아 두우간에 배회하니 백로는 횡강하고 수광은 접천이라 가는 저 곳 ○○○겨 만경창파 떠나갈 제 호호한 빈 천지에 바람 만난 저 돛대는 그칠 바를 몰라 있고 표표한 이내 몸은 우화등선 되었에라 취흥이 도도하여 뱃전치며 노래헐 제 그 소리에 하였으되 계도혜란장으로 격공명혜 소유광이로다 묘묘혜여회여 망미인이 천일방이로다 통소로 화답헐 제 그 소래 오오하여 여원여모 여읍여소 여음이 요요하여 실같이 흘러가니 유학에 (잠긴 어룡이 흥을 겨워 춤을 추고 고주에 이부들은 망부한을 못 이겨라 추연히 일어앉아 옛일을 생각하니 만사가 꿈이로다 월명성희 오작이 남비하니 조맹덕의 지은 시요)1) 서망하구 동망무창 산천이 상조하여 울울창창하였으니 맹덕의 패한 데로구나 거드렁거리며 지내보세. 


3. 심화영 창 단가 <만고강산> 

소리: 심화영 북: 이규호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일시 및 장소: 1990년대 충청남도 서산 

심화영은 1913년생으로 이보형 선생님은 1988년 심화영을 처음 조사한 이래 여러 차례 서산을 찾아 심화영 및 심정순 일가에 대해 조사한 바 있다. 심화영은 현재 80여 세이나 현재까지도 정확한 기억력과 맑고 깨끗한 성음을 유지하고 있다. 본 음향자료에 수록하는 단가 <만고강산>은 1990년대 후반기 심화영이 소리하고 이규호가 북반주하여 녹음한 자료를 이보형 선생님께서 현지조사를 하며 입수한 것이다. 
심화영의 단가는 전체적으로 상성을 주로 쓰고 심화영의 청은 비교적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경기·충청도에서 형성되고 유행한 중고제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심화영은 중간 중간 사설을 2∼3박씩 밀고 당겨 붙임새에 변형을 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대마디 대장단의 틀에 맞추어 또박또박 <만고강산>을 부른다.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이 어데메뇨 일봉래 이방장과 삼영주 이 아니냐 죽장짚고 풍월 실어 봉래산을 구경갈 제 경포 동정호 명월을 구경하고 청간정 낙산사와 총석정을 구경하고 단발령을 얼른 넘어 봉래산을 올라서니 천봉만학 부용들은 구름 우 솟아있고 백절폭포 급한 물은 은하수를 기울인 듯 잠든 구름 깨어 일고 맑은 안개 잠겼으니 선경일시가 분명허구나 때마침 모춘이라 붉은 꽃 푸른 잎과 나는 나비 우난 새는 춘광춘색을 자랑한다 봉래산 좋은 경치 지척에 던져두고 못 본 지가 몇 핼런고 다행히 오늘날으 만고강산을 유람하여 이곳을 당도하니 옛일이 새로워라 어화 세상 벗님네야 상전벽해를 웃들 마소 복진낙엽이 없을까 서산으 지는 해는 양류사로 잡아매고 청천으 걸린 달은 계수옆으 머물러라 한없이 놀고 가자 아니 놀고 무엇을 할꺼나 거드렁거리고만 놀아보세. 

4. 김재근 창 단가 <편시춘> 

소리: 김재근 북: 김재근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 일시 및 장소: 1989년 6월 경상남도 사천 

김재근은 이보형 선생님께서 경상남도 사천 지방의 판소리인들을 현지조사할 때 만난 판소리인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김재근은 소리꾼보다는 고수로 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 조사 당시에도 사천 지역에서 활동하던 선동옥이라는 소리꾼의 소리를 반주하기 위해 조사에 참여하였다가 이보형 선생님의 권유로 단가 <편시춘>을 녹음하게 되었다. 김재근이 소리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취미로 소리를 배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단가에는 의외로 들을 만한 대목이 있다고 하겠다. 김재근은 단가 <편시춘>의 앞 부분 몇 장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계면 성음으로 일관하여 부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는 20세기 초 이후 많은 창자들이 단가를 계면조화하여 불렀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 결과이다. 

아서라 세상사 쓸곳없다 군불견 동원도리 편시춘 창가소부야 웃들마소 대장부 평생사업 거연이 지나가고 동유수 구비구비 물결은 바삐바삐 백천은 동도해요 하시에 부서귀랴 우산의 지는 해는 재경공의 눈물이요 분수추풍곡은 한무제의 서름이라 피죽죽 저 두견아 성성제혈을 자랑마라 기천년 미귀혼이 너도 또한 슬프련만 천고상심 우리 인생들은 봄이 돌아오면 수심인가 낙양성동 낙화소식 공자왕손이 처량쿠나 청춘몽을 겨우 깨고나니 백발 설움이 더욱 섧네 오능금시 은안백마 당시 행락이 나것마는 장안청루 소년들은 저 혼자만 자랑헌다 창강에 배를 띄워 풍월을 가듣 싣고 범범중류 떠나갈 제 백구 비거비래뿐이로구나 퉁소소리가 옹옹하니 소자첨 적벽인가 어디서 비파곡조 인불견 수봉청하니 소상고적이 방불하구나 거드렁 허여가며 놀아. 

5. 나성엽 창 단가 <이산 저산> 

소리: 나성엽 북: 미상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 일시 및 장소: 1988년 8월 9일 충청남도 논산 

나성엽이 부른 단가 <이산 저산>은 김여막이 부른 <이산 저산>과 사설과 가락이 조금 다르다. 나성엽은 약간 쉰 듯한 성음을 갖고 있지만 발음을 매우 정확히 하고 대목 대목 시김새를 공들여 하나하나 끝까지 마무리지어서 부르는데, 이러한 점에서 오랜 시절 소리와 함께 해 온 그 나름의 공력을 알아챌 수 있다. 
나성엽은 대담 말미에서 이 단가가 동초제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나성엽은 김연수가 즐겨 불렀던 단가 <이산 저산>을 김연수와 같은 사설로 부르며 사설 내용에 따라 평조적 선율과 계면조적 선율을 적절히 섞어서 부르는 점에서도 김연수제를 따르고 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면 산림풍경 너른 들 만자천홍 그림병풍 앵가접무 좋은 풍류 철가는 줄을 모르게 되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쿠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 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승화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또한 경개 없을소냐 상엽홍어이월화라 중양추색용산음과 한로삭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하냐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 바람에 백설은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 되고 보면 월백설백 천지백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일래라 봄은 갔다가 연년이 오건마는 이내 청춘은 한 번 가고 다시 올 줄을 모르는가 어와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 말 들어보소 사람이 비록 백 살을 산다 하되 인수순약격석화요 공수래 공수거를 짐작하시는 이가 몇 분인가 노세 젊어 놀아 늙어지면 못 노느니라 놀아도 너무 허망히 하면 늙어지면서 후회되리니 바쁠 때 일하고 한가할 때 틈내서 사업을 하여가면서. 

6. 박춘성 창 단가 <진국명산> 

소리: 박춘성 북: 박춘성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일시 및 장소: 1976년 2월 1일 전라남도 광주 

박춘성은 12세에 이진영에게 단가를 배우기 시작하여 13세부터 본격적으로 소리학습을 하였는데, 대부분 정응민 선생의 문하에 있었고 40대 초반에 박동실의 문하에 잠깐 들어갔다가도 정응민과 소리제가 많이 달라 3개월 가량 배우다가 중지하고 돌아왔다고 하니 정응민제의 영향이 매우 클 것을 알 수 있다. 박춘성에 의하면 정응민이 좋아했던 단가가 <진국명산>과 <녹음방초> 등이라고 하였으며, 이보형 선생님의 현지조사에서도 박춘성은 <진국명산>과 <녹음방초>를 녹음하였다. 
정응민은 잔 시김새와 반드름을 쓰는 시류를 좇지 않고 보성에서 은거하며 고조(古調)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소리를 많이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인지 박춘성은 <진국명산>을 부를 때에 매우 점잖은 성음을 쓰며 곡조도 화평한 평조적 선율로 일관한다. 박춘성이 부른 단가 <진국명산>에는 정응민제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진국명산 만장봉이요 청천삭출 금부용이라 거벽은 흘립하여 북주는 삼각이요 기암은 두기 남안 잠두로다 좌룡낙산 우호인왕 서색은 반공 응상궐이요 숙기 종영 출인걸이라 미재라 동방 산하지고여 성대태평 의관문물 만만세지금탕이라 연풍코 국태민안커늘 인유를 봉무하고 면악등림하여 취포반환하오면서 감격군은하오리라 남산송백 울울창창 한강유수난 호호양양 주상전하는 차산수류같이 천수무강하사 산붕무갈토록 천천만만세를 태평으로만 누리소서 우리도 일민이 되어 격양가를 부르리라 아니 놀고서 무엇할꺼나 거드렁거리고 놀아. 

7. 신옥주 창 단가 <천생아재> 

소리: 신옥주 북: 이보형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일시 및 장소: 1988년 8월 9일 충청남도 논산 

신옥주는 소리 학습을 길게 한 창자가 아니고 오랜 기간 활동을 쉬었지만, 16세 때 전주에서 임방울, 19세 때 전주에서 정정렬 등 명창들에게도 소리학습을 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보형 선생님의 현지조사 당시 신옥주는 <천생아재>와 <적벽가> 중 ‘조조호령’ 대목 및 ‘군사설움’ 대목을 녹음하면서 정정렬제라고 밝혀서, 본 CD에 수록된 신옥주창의 <천생아재>는 정정렬에게 배운 소릿조가 중심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옥주는 <천생아재>를 부르며 뒷 장단의 사설을 앞 장단의 마지막 2∼3박으로 당겨붙여서 부르거나 또는 사설을 장단 끝에서 단락짓지 않고 다음 장단의 첫 2∼3박까지 끌고가기도 하는 등 대마디 대장단의 틀을 넘나드는 사설붙임을 구사하는데, 이는 정정렬의 단가 및 소리 대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진춘도는 중간에 계면성음을 몇 장단 살짝 섞어 쓰기도 하지만, 20세기 초 이후 유행했듯이 마지막을 계면조로 돌리지 않고 평조적 곡조로 <천생아재>를 마무리지어 부른다. 

천생아재 쓸 곳 없다 세상공명을 하직하고 인간영화 몽중사라 죽장망혜로 백이숙제를 보랴 하고 수양산을 올라가니 운무심이 출수하고 조○○○○시와니라 벽산이 무언하니 뉘를 다려 물어보리 지재차산중이엇마는 운심부지처라 산형을 둘러보니 만장봉은 단○을 ○었난디 층층한 절벽이오 늘어진 장송 펑퍼진 떡갈능수 모두 모두 다 펐난디 가는 ○○유수 ○○○ 얼크러지고 뒤틀어졌네 반야청풍 쇄옥성은 적막산중 화작작 우수 죽장을 짚고 차○을 뒤져라도 만장봉을 올라가 앉어 서로 불러 살수로와 잠깐 그릇을 ○○○ 그릇을 생각하고 방으로 나려가니 멱라수심이오 해당화 반개로다 삼천강수 흐르나니 물결은 뛰노나니 은린이라 도연명 오류촌과 역처사 버들가지 ○떼오는 저 황앵은 삼춘을 움직이고 사월팔일을 자랑마소 구십춘광 과거후으 때를 어이 만날손가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이라 헐 일을 하여가면서 놀아보자 

8. 이옥진 창 단가 <사창화림> 

소리: 이옥진 북: 미상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일시 및 장소: 1988년 8월 9일 충청남도 논산국악원 

이옥진이 부른 단가 <사창화림>을 들어보면 여자지만 매우 힘있는 성음을 가지고 있으며 소리는 비교적 쭉 뻗어하는 특징이 있다. 이옥진은 소녀 시절 부산에서 소리를 배웠고 조사 당시에는 충청도 출신 창자인 나성엽에게 소리를 학습하던 중이었는데, 잔 기교와 시김새를 많이 쓰지 않는 그의 소릿조는 성음 하나하나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호남 출신 창자들의 소리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옥진이 부르는 <사창화림>의 사설은 박봉술이 <사창화류>라는 제목으로 부르는 단가와 사설과 장단이 같다. 현재는 단가를 대부분 12박 중모리로 부르지만 예전에는 6박 엇중모리로 불렀다고 하며, 이러한 고제 단가의 흔적은 박봉술이 엇중모리로 부르는 <사창화류>의 전반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옥진 역시 <사창화림>의 전반부를 엇중모리로 부르고 중간의 ‘아서라 훨훨 다 버리고’하는 대목부터 중모리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옥진의 <사창화림>에도 역시 고제적 특징이 남아 있다고 하겠다. 

사창화림 중으 백마금편 소년 평생문전 칠현금을 알고 즐기느냐 모르고 즐기느냐 체언제법을 날다려 묻거드면 궁천지리를 대강만 일러 태평대정제왕이 요순밖에 또 있느냐 아미봉 유광국의 격양가도 좋다 경력산 어느 때 양반이 게 뉘신고 민심종덕하야 일장금을 지을 때으 창오산 벽계변으 절로 자라는 석상오동 옥부로 찍어내어 삼척 재결하니 궁상각치우는 오음을 차지허고 금목수화토는 사시를 맡아 있다 제일 행공허니 토음이 궁성이라 대현은 농농 노룡 우는 소리요 소현은 영영 청학의 울음이라 심방곡 봉학사는 태평곡의 흥이로다 
아서라 훨훨 다 버리고 한 곳을 당도허니 조그만헌 법당 안에 중들이 모도 모아 수륙재 맞이를 허는구나 어떠한 대사는 법관 쓰고 어떤 중은 꽝쇠 들어 또 어떤 중은 목탁 들고 머리 깎은 상좌 하나 다래몽둥 큰 북채를 양손에 갈라들고 북을 두리둥퉁 목탁 또드락 똑닥 꽝쇠는 꽈강 꽝 죽비 촤르르르르 칠 제 탁자 앞에 늙은 노승 하나는 가사 책보를 어스러지게 메고 구붓꾸붓 예불을 허니 연산모종이 그 아닌가 그 절로 들어가서 재맞이 밥이나 많이 얻어 먹고 흔들흔들거리며 헐일을 허며 놀아. 


9. 진춘도 창 단가 <이산 저산> 

소리: 진춘도 북: 미상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일시 및 장소: 1988년 8월 9일 논산국악원 

<사절가> 또는 <이산저산>이라고 하는 단가는 20세기에 들어와 여러 창자들에게 많이 불려져 왔는데 창자에 따라 사설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진춘도가 부르는 단가 <이산 저산>은 김여막이 부른 <이산 저산>과 같은 사설로 전반부를 부르고, 후반부에는 나성엽이 부른 <이산 저산>과 같은 사설로 부른다. 진춘도의 단가 <이산 저산>에서는 길게 뻗을 때 요성을 많이 쓰는 등 다소 어색한 면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진춘도의 소리 학습이 그리 길지 않고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아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하겠다. 진춘도의 단가는 공력이 많이 들어간 소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씩씩한 성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 음 한 음을 또박또박 내어 주는 점이 장점이라고 하겠다. 
김연수와 조상현 등 <이산 저산>을 즐겨 불렀던 창자들의 단가에 비하여 볼 때, 진춘도는 <이산 저산>을 부르며 평조적 곡조를 주로 하여 부르고 계면 성음을 그리 많이 넣지 않으며 중간 중간 계면 성음을 넣는 대목에서도 애절한 느낌을 강하게 하여 부르지는 않는다. 이는 진춘도가 이기권에게 주로 소리 학습을 한 영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반드름을 즐겨 쓰지 않았던 정정렬의 수제자인 이기권도 단가에 계면 성음을 섞어 넣는 반드름을 선호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구나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쿠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 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은 반겨헌들 쓸 데가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오면 녹음방초승화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삭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을 어떡하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낙목한천 찬 바람으 백설이 펄펄 흩날리어 ○○색이 되고 보면 월백설백천지백허니 백발이 모두 다 원수로구나 봄아 갔다가 연년이 오건마는 이내 청춘은 한 번 가서 다시 올 줄을 모르는가 무정세월을 오고 가지를 말아라 알뜰한 청춘들이 다 늙는다 노세 놀아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느니라 놀아도 너무 허망히 하면 늙어지면서 후회가 되느니 사업을 하여가면서 놀아. 


10. 최명임 창 단가 <관동팔경(동해가 막막허여)> 

소리: 최명임 북: 송희열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일시 및 장소: 1988년 8월 8일 충청남도 대전 

최명임은 소리 학습이 그리 길지는 않은 창자로 24세부터 가정에 은거하다가 1984년부터 대전 지역에서 소리 활동을 재개하였다고 한다. 소리 스승으로는 정응민, 정광수, 오천수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88년 조사 당시 활동 지역은 대전이지만, 출생지가 광주 지역이고 주로 전남에서 서편제 바디를 배워서인지 단가 <관동팔경>을 부를 때 대마디 대장단보다는 밀고 당기는 엇붙임을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 

동해가 막막하여 물과 하늘이 한 빛이라 총총한 바위돌은 병풍으로 둘렀난 듯 연파연월이 잠겨 수루룩 출렁 조수진다 주란화각이 높이 솟아 총석정이라고 일러있고 석양으 둥실둥실 배 띄울 제 뒤에는 벽산이요 앞에는 창해양양 바람마저 시를 읊고 뱃전치며 노래헐 제 물외초연 맑은 취미 삼일포라 하는데요 구비창창 흐르난 물 티끌 근심 싯쳐낼 제 버들잎은 떠서오고 물새 펄펄 나는구나 가객시인 누구누구 이 정자에 쉬여간고 풍경 살펴 배회하니 천간정 경치 좋고 양양이라 십리 서쪽 꽃이 날고 송음으 육모정도 좋커니와 약수 또한 향기롭다 새벽 쇠북치는 소리 먼 바다 동터온다 해 뜨는 좋은 경치 낙산사라고 하는데요 록파담담 거울 속에 백조쌍쌍 흥겨웁고 수양연애 환가일곡 세상공명이 꿈밖이라 해 저물고 달 떠오니 허해공에 월출했네 아마도 달 구경은 경포대가 절승이라 삼천리 금수강산 관동팔경이 더욱 좋아 우리나라 자랑이요 세계의 절승이라 아마도 이런 경치 아니 놀고 무엇하리 

11. 김명심 창 단가 <적벽부> 

소리: 김명심 북: 이보형 
현지조사: 이보형 
녹음 일시 및 장소: 1989년 5월 22일 경상남도 부산 

김명심의 대담에 이어진 단가 <적벽부>의 녹음은 현지 조사 중 테잎이 충분하지 않았던 관계로 전반부 중 일부만이 채록되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기 경상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창자의 소리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여기에 수록한다. 

임술지추칠월 기망에 적벽강 배를 띄워 임기소지 노닐 적에 청풍은 서래하고 수파는 불흥이라 술을 들어 객을 주며 진풍명월 읊조리고 요조지장 노래할 제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장) 


1. 김여막 
본명: 김화선(여) 
생년월일: 1928년 1월 14일 
출생지: 전라남도 함평군 대독면 평개천 

김여막은 192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5세 때 정읍으로 이주하였고, 몇 년 후에는 다시 함평으로 이주했다. 12세 때 서울로 상경하여 다옥정에서 약 1년 동안 임춘앵에게 승무, 단가를 익혔고, 판소리 <춘향가> 중 여러 대목을 토막소리로 배웠다. 14세 때는 정읍권번에서 3년간 있으면서 강장원에게 단가와 <박탄가(흥보가)> 중 몇 대목을 토막소리로 배웠고 또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모씨에게도 판소리를 배웠다. 17세 때는 목포권번의 최막동 문하에서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박탄가> 토막소리를 사사받았다. 조사 당시 김여막은 학습한 소리 대목을 많이 잊긴 하였으나 함평에서 틈틈히 제자를 가르치며 활동하고 있었다. 

2. 김계화 
본명: 김순례(여) 
생년월일: 1925년 10월 2일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대안리 

김계화는 1925년 나주에서 태어났다. 13세부터 18세까지 목포권번에서 오수암에게 단가 <함평천지(호남가)>, <만고강산>, <죽장망혜>와 판소리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 ‘조자룡 활 쏘는 데,’ ‘적벽대전,’ ‘새타령’을 배웠고 <춘향가>의 경우에는 ‘초입’부터 ‘옥중상봉’까지, <심청가>의 경우에는 ‘초입’부터 ‘인당수’ 대목까지, 그리고 <흥보가>와 <토끼타령(수궁가)> 전판을 배웠다. 
김계화는 18세 때 서울로 상경하여 경운동에 살면서 20세 때까지 임춘앵과 함께 강장원 문하에서 판소리 <적벽가> ‘초입’부터 ‘군사 설움타령’까지, <수궁가> 중 ‘토끼 수궁에 들어갔다 나와서 좋아하는 데’를 배웠고, 그리하여 21세 때에는 남원 명창대회에 참가하여 6일간의 경연 끝에 1등을 하였다 한다. 김계화는 25세 때부터 전라남도 보성에 은거하여 살다가 27세 때 부산으로 가서 7, 8년간 광주별장을 경영하고 국악협회 부산지부장을 하였다. 또 35세 무렵에는 마산으로 가서 마산국악원 선생을 하였고, 40세 쯤 지나서는 마산 산호동에 스스로 국악연구소를 세워 경영하며 교습을 하였다. 그리고 1987년 이후부터 조사 당시까지 울산에서 울산국악원을 경영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었다. 
김계화는 1989년 이보형 선생님의 조사에서 ‘그간 무용에 주력하여 판소리를 대부분 잊었다’고 하였는데, 당시 부를 수 있는 대목은 오수암제 <춘향가> ‘초입’부터 ‘사랑가,’ ‘이별가,’ ‘십장가,’ ‘박석티’와 <심청가> 중 ‘심봉사 황성 올라가는 데,’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 <수궁가> 중 ‘토끼화상’부터 ‘관대장장’까지, <흥보가> ‘초입’부터 ‘첫째 박타령’ 등이라 한다. 

3. 심화영 
본명: 심화영(여) 
생년월일: 1913년 8월 4일 
출생지: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심화영은 20세기 초반 서울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판소리 명창 심정순의 딸이자 가야금 명인으로 유명했던 심상건의 사촌동생으로, 충청남도의 명인·명창 집안 출신이다. 심정순은 일명 심춘희라 불렸고 판소리, 가야금풍류, 가야금 심방곡, 가야금 병창의 명인이었다. 2남 2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심재덕이 가야금 풍류, 가야금 병창과 판소리, 단소풍류, 가야금 심방곡을 잘 하였으며 언니 심매향은 가야금 병창, 판소리, 잡가, 승무에 능하였다. 
심화영은 18세 때 서산에서 심재덕에게 가야금 풍류와 가야금 병창을 익혔고 <춘향가> 초앞의 ‘기산영수,’ ‘나귀안장,’ ‘적성가,’ <심청가>의 ‘선인따라’ 등의 여러 소리 대목을 배웠다고 한다. 심화영은 한때 소리 활동을 하지 않아서 많이 잊어버리긴 하였지만, 최근 중고제 소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현재도 기억을 되살려 잃어버렸던 여러 소리대목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김재근 
본명: 김재근(남) 
생년월일: 1923년 8월 1일 
출생지: 경상남도 삼천포시 이홀동 

김재근은 경상남도 삼천포 지역에서 고수로 활동하던 음악인이었다. 1954년 삼천포에서 오익환에게 단가 몇 대목 그리고 <춘향가> 초앞, 그리고 <수궁가> 중 ‘고고천변’ 등을 취미로 배운 적이 있으며 이때 판소리북도 배웠다 한다. 1957년에는 명고수 김명환에게 판소리 고법을 배웠으며 1983년 경상남도 지방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고수로 지정되었다. 오익환은 전라도 사람으로 판소리와 고수로 능했는데 사천과 삼천포에 와서 국악원을 경영했다 한다. 김재근이 30세 때 판소리와 북을 배울 당시 오익환은 이미 70세가 되었다 한다. 

5. 나성엽 
본명: 나완집(남) 
생년월일: 1919년 2월 7일 
출생지: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두왕리 

나성엽은 1919년에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나 11세부터 13세까지 이웃집에 살던 최선원에게 단가 <호남가>, <남한산성>, <추월강산>,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등을 배웠다. 나성엽은 13세부터 19세까지 군산국악원에서 최명곤에게 판소리 <춘향가> 전판을 공부하였고, 19세부터 23세까지 최계철에게 <심청가>를 모두 배웠다. 그리고 이때 김창진을 만나 토막소리를 배운 바 있다. 
나성엽은 22세에서 23세 무렵에 서울로 상경하여 종로권번에서 소리사범을 하였고 25세에는 이리로 가서 이리권번의 소리사범을 3년간 하였다. 28세에는 대전으로 가서 대전권번의 소리사범으로 있었는데, 이 시기 이기권을 만나 그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나성엽은 38세부터 49세까지 소리사범으로 군산, 이리, 광주, 전주 등지에 있는 국악원을 전전하였고 49세 무렵에 강경에 터를 잡아 국악원을 손수 경영하기도 했으며, 54, 55세 때에는 대전국악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후 다시 여러 국악원에서 사범으로 활동하다가 강경, 군산을 거쳐 1988년 이보형 선생님의 현지조사 당시에는 논산국악원 소리사범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성엽은 최명곤제 <춘향가>, 김계철제 <심청가>, 이기권제 <수궁가>를 구사했고 <흥보가>는 대목에 따라 최명곤제와 오수암제를 섞어서 짰으며 <적벽가>는 박봉술의 녹음테잎으로 공부한 것이라 한다. 나성엽은 국악원 사범으로 활동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몇 해 전에 작고하였다. 

6. 박춘성 
본명: 박옥심(여) 
생년월일: 1921년 4월 12일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군 득양면 박실 

박춘성은 1921년 보성에서 태어나 12세 때 이진영에게 단가를 배웠고 13세부터 33세까지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에서 정응민에게 판소리 <춘향가> 초입부터 ‘어사출도’까지, <심청가> 중 초입부터 ‘황후 자탄’까지,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부터 ‘조자룡 활 쏘는 데’까지, <수궁가> 중 초입부터 ‘토끼 수궁에 들어가는 데’까지 배웠다. 박춘성은 오랫동안 소리를 않고 가정에 들어앉았던 탓에 1978년 이보형의 현장조사 당시 기억하고 부를 수 있는 대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열거해 보면 <춘향가> 중 초입부터 ‘이도령 광한루 구경’까지, ‘농부가’부터 ‘어사와 장모’까지, <심청가> 중 초입부터 ‘심청이 물에 빠지는 데’까지,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부터 ‘조자룡 활 쏘는데’까지, <수궁가> 중 초입부터 ‘상좌 다툼’까지 등이었다. 
박춘성은 정응민한테 소리를 배우고 있던 18세 때 전주 명창대회에 참가하여 1등을 했고 21세 때에도 1등을 했으며, 21세 때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하여 약 2년간 지방 순회공연을 다녔다. 그리고 정응민 문하에서 공부하는 도중 22세 때 전라남도 옥과 지실이라는 곳에 있는 박석기 초당에서 박동실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정응민한테 소리를 배우다가 박동실 문하로 잠시 들어간 것은 정응민이 <적벽가> 중 ‘삼고초려’ 대목을 잊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부분을 때워넣기 위해서였다 한다. 그러나 박동실의 소리가 정응민제와 많이 달라 3개월 가량 배우다가 중지하고 되돌아왔다 한다. 박춘성은 1976년 정응민제 판소리로서 전남지방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으며 말년에 광주에서 살다가 작고하였다. 

7. 신옥주 
본명: 신옥주(여) 
생년월일: 1923년 3월 25일 
출생지: 충청남도 청원군 부용면 외천리 

신옥주는 1923년 청원에서 태어나 16세 때 전주에서 임방울에게 수개월 동안 판소리 <수궁가> 중 ‘왕왈 연하다’부터 ‘토끼화상’까지 배웠다. 17세 때는 잠깐 산으로 가서 김토산에게 판소리 <적벽가> 중 ‘시성정봉 활 쏘는 데’를 배웠고 17세부터 18세 봄까지 조모씨 문하에서 판소리 <춘향가> 중 ‘몽중가’부터 ‘어사출도’까지, <적벽가> 중 ‘조조 호령,’ ‘군사 설움타령’ 등을 배웠다. 
신옥주는 19세 되던 해 가을에 가정으로 들어가 은거하다가, 6·25 사변 직후인 30세 때 다시 국악계로 나와 전라북도 이리 백운장에서 1년 6개월쯤 있다가 다시 가정으로 들어갔다. 현지조사 당시인 1988년에는 충청남도 논산에서 가정생활을 하고 있으며, 민속행사 때 경로당 위문공연 등에 나와 판소리를 부르는 정도로 공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말년에 기억하고 부르는 소리는 주로 정정렬제이다. 

8. 이옥진 
본명: 이옥진(여) 
생년월일: 1930년 12월 24일 
출생지: 함경북도 해령 

함경북도 해령 출신인데 13세 때 논산으로 왔으며 본적 및 1988년 조사 당시 거주지는 논산 대교3동 203번지이었다. 
17세 때 부산권번에 있으며 19세 때까지 45세 경이었던 김화정씨에게 <춘향가>, <심청가>를 배웠다. 거의 전 바탕을 배웠으나 20세 때 결혼 후 가정생활을 하느라 중간 중간 많이 잊어버렸다고 하였다. 1986년부터 논산에서 나성엽에게 <춘향가> ‘초입’부터 앞 부분을 배우고 ‘이별가’에서 ‘몽중가’까지를 배웠으며 조사 당시인 1988년에는 ‘신연맞이’를 배우는 중이었다고 한다. 


9. 진춘도 
본명: 진춘도(여) 예명: 진옥 
생년월일: 1927년 1월 26일(음력) 
출생지: 전라북도 김제군 백군면 부용리 

진춘도는 이보형 선생님께서 1988년 8월 9일 논산국악원에서 나성엽, 이옥진 등의 판소리인들을 만날 때 대담한 창자이다. 소리학습은 14세 때 목포권번에 들어가면서 오수암에게 시작했다고 한다. 1년간 <춘향가> 토막소리와 단가를 조금씩 배웠다고 하며, 이리로 나와 예기조합에서 이기권에게 3년 정도 다시 배웠다고 하며 김대권에게도 반년 정도 배웠다고 한다. 진춘도가 현지조사 당시 보유하고 있는 소리제는 대부분 이기권 바디라고 하며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를 토막토막 배웠다고 하였다. 나성엽과 진춘도는 ‘이기권이 정정렬 제자이지만 이필곤, 이행곤, 이정곤 등 형제들이 모두 소리꾼과 공인 노릇을 하는 예술인 집안 출신이어서 집안소리의 영향도 갖고 있었으며 여기에 자기 소리를 덧붙여서 소리를 하여 이기권이 순수한 정정렬제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진춘도는 김제와 전주 등지에서 살았는데, 1970년대 김제 학원에서는 강종철에게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잠깐 소리를 배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진춘도는 1980년대에 논산으로 이사와서 국악 동호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간간히 공연활동도 한다고 하였다. 

10. 최명임 
본명: 최명임(여) 예명: 최해윤 
생년월일: 1942년 8월 28일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조사당시 거주지: 충청남도 대전시 중구 선화1동 920 

최명임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14세 때 전남 보성에서 정응민에게 3년간 <춘향가> 중 ‘사랑가’부터 ‘이별가’까지, 그리고 ‘기생점고’를 배웠고 또 <심청가>를 학습했다고 한다. 16세 때에는 광주에서 정광수에게 <심청가> 중 ‘곽씨부인 유언’에서 ‘집이라고 찾아오니’를 배웠다고 한다. 20세 때에는 광주에서 오천수에게 <춘향가> ‘초앞’부터 ‘천자풀이’까지를 배웠다고 한다. 24세 때부터 서울 및 대전에서 가정에 은거하였는데 4년 전부터 판소리 활동을 재개하였고 대전에서 조공례에게 <수궁가>를 배워 지금 ‘여봐라 주부야’에서부터 ‘동작대’까지 소리한다고 한다. 
11. 김명심 
본명: 김명심(여) 
생년월일: 1937년 7월 10일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김명심은 부산에서 활동해 온 판소리와 무용을 함께 한 예능인이다. 김명심은 8세 때 국극사에서 애기 심청역을 했다 하는데, 이 국극사에는 임방울, 박동실, 김연수, 박봉술과 같은 명창들이 있었다 한다. 13세 때에는 순천에서 박봉술에게 5년간 판소리를 배웠는데 <적벽부>, <천생아재> 등 여러 단가와 <춘향가> 중 ‘사랑가,’ <심청가> 중 ‘봄이 가고,’ ‘곽씨부인 죽는데,’ <적벽가> 중 ‘불지르는 데’ 등 여러 대목을 배웠다 한다. 18세 부터 22세 때까지 임춘앵 단체를 수행하였고, 22세 이후 이 단체를 나와 언니 김순례에게 5년간 춤을 배우며 박봉술제 판소리를 복습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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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 사방에 나사가 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사가 너무 꽉 조여져 있거나 혹은 반대로 헐렁하게 덜 조여져 있다면 늘어지는 듯한 소리가 날 수 있습니다.
너무 꽉 조여져 있다면 살짝 풀어주시고 너무 헐렁하게 덜 조여져 있다가 살짝 조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늘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필름이 끊어졌다는 분들이 계신데
재생이 아닌 빨리 감기를 하시는 등의 작동중 갑자기 멈춘다거나 그러시면 그 힘에 의해 끊어질 수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고객 부주의 이기때문에 교환 혹은 반품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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